셀럽 협업이 시즌제 상품으로 자리잡다
스위스 스포츠 브랜드 온(On)이 배우 젠데이아(Zendaya)와 함께 만든 두 번째 공동 컬렉션을 10월 1일 일본에서 선보였다. 온 공식 온라인스토어와 긴자 플래그십 매장, 그리고 아토모스 핑크(ATMOS PINK) 하라주쿠점과 아토모스 공식 온라인스토어까지 네 개 채널에서 동시에 풀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협업의 무게를 보여준다. 단순히 유명인의 얼굴을 빌린 광고가 아니라, 스타일리스트 로 로치(Law Roach)가 제품 디자인 단계부터 참여해 파이썬 프린트 웨어와 신형 스니커즈 클라우드노바 문(Cloudnova Moon)까지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발매는 스포츠 브랜드가 패션계의 크리에이티브 권위를 어떻게 사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특히 이번 2탄은 2024년 6월 시작된 협업이 1년을 넘겨서도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는 점에서, 한 시즌짜리 화제성 이벤트와 여러 시즌을 관통하는 상품 전략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주목할 만하다. 유명인의 이름만 빌려 한 철 반짝 팔고 사라지는 콜라보가 흔한 업계에서, 같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전작보다 진화한 실루엣과 신발을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파트너십이 일회성 마케팅을 넘어선 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의 핵심은 '움직임'이라는 테마를 옷의 구조 자체에 녹였다는 점이다. 오버사이즈 크루넥과 스웻팬츠에는 실루엣을 조절할 수 있는 루싱과 번지코드를 적용했고, 보디슈트와 피트감 있는 긴팔 상의, 하프집 아노락에는 카모플라주처럼 변형한 파이썬 프린트를 과감하게 넣었다. 클래식 액션 영화 속 신체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명대로, 옷 자체가 정적인 애슬레저가 아니라 격렬한 동작을 전제로 설계된 퍼포먼스웨어라는 점이 전작과의 차이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협업으로 탄생한 클라우드노바 문의 신형은 메리제인 슈즈에서 실루엣을 가져오면서도 엔지니어드 니트 갑피와 스피드 슈레이스를 결합해, 여성스러운 디자인 언어와 러닝화의 기능성을 한 켤레에 담았다. 2024년 6월 시작된 두 브랜드의 협업이 2025년 가을 클라우드존 문을 거쳐 이번 2탄에 이르렀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단발성 콜라보가 아니라 시즌을 거듭하며 디자인 언어를 발전시키는 연작 구조로 가고 있다는 뜻이고, 이는 셀럽 협업을 광고 한 편으로 소비하지 않고 브랜드의 정규 라인업처럼 운영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프린트 하나, 실루엣 하나를 바꾸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매 시즌 신발 라인 자체를 새로 개발한다는 점도, 이 협업이 마케팅 캡슐이 아니라 제품 개발 조직의 정규 트랙으로 편입됐음을 보여준다.
왜 지금인가
이 협업이 특히 눈에 띄는 이유는 참여한 두 사람의 이력에 있다. 온은 2010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은퇴한 프로 러너 올리비에 베르나르가 정원용 호스를 신발 밑창에 붙여 쿠셔닝을 실험한 데서 출발한 브랜드로, 설립 5개월 만에 소매 유통에 진입하고 신발 업계 혁신상을 받을 만큼 짧은 역사에 비해 빠르게 기술력을 인정받아온 회사다. 그런 브랜드가 나이키·아디다스·호카 같은 선두주자들과 경쟁하는 러닝화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할 때 선택한 카드가 로 로치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로 로치는 2011년 당시 열네 살이었던 젠데이아를 처음 스타일링한 뒤 15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온 인물로, 2023년 풀타임 스타일리스트 활동에서 은퇴하면서도 젠데이아와의 작업만큼은 독점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즉 온은 아무나 섭외 가능한 셀럽이 아니라, 패션 업계에서도 대체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 스타일리스트의 희소성 자체를 구매한 셈이다. 스포츠 브랜드들이 운동선수 엔도스먼트를 넘어 패션 디렉터급 인물과 다년 계약을 맺는 흐름은 최근 몇 년 새 가속화돼 왔는데, 이번 발매는 그 흐름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상품 전략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러닝화 시장이 기능 경쟁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되지 않는 포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술력 다음에 올 경쟁 축이 결국 '누구와 함께 만드는가'라는 크리에이티브 신뢰도라는 사실을 이번 발매가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다음에 볼 것
당장 확인할 지점은 긴자 플래그십 1층에서 10월 1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파이썬 프린트 테마 팝업이다. 화면 앞에서 촬영한 자신의 모습에 컬렉션 아이템을 가상으로 입혀보는 체험형 콘텐츠 더 페이퍼 돌 2.0이 설치되고, 컬렉션 구매자에게는 수량 한정으로 오리지널 슈즈 참을 증정한다. 이런 오프라인 체험 장치를 세계 4개국 플래그십에 동시에 배치했다는 것은, 온이 이번 협업을 단순 상품 출시가 아니라 매장 단위의 브랜드 경험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감독 팀 판테라가 만든 캠페인 필름과 사진작가 캐스 버드의 비주얼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발매는 제품과 공간과 영상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인 종합 캠페인에 가깝다. 앞으로 지켜볼 것은 이 2탄이 클라우드존 문에 이어 또 한 번 완판 기록을 세울지, 그리고 온이 로 로치와의 협업을 매 시즌 반복하는 정규 코너로 굳힐지다. 만약 세 번째, 네 번째 시즌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스포츠 브랜드가 패션 스타일리스트를 객원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실상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내재화하는 새로운 산업 표준이 등장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고, 다른 스포츠 브랜드들도 비슷한 구조의 장기 파트너십을 서둘러 모색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