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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Hands On·6 min read·2026.09.29

알고리즘 시대를 설계한 건 포르노였다

포르노 산업이 먼저 설계한 인터넷 문법

JIWOOTRENDFEED DESK

포르노 산업이 먼저 설계한 인터넷 문법

파이낸셜타임스 기자 패트리샤 닐손이 5년 넘는 취재 끝에 내놓은 신간 『Guilty Pleasure: The Pornification of the Internet, the Economy, and Everything Else』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포르노는 인터넷 위에 올라탄 콘텐츠 중 하나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시스템 자체의 설계도를 그린 산업이었다는 것이다. 닐손은 이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이 2024년부터 제공한 탐색 탭 초기화 기능을 직접 써봤다. 개인 정보를 최소한으로 입력한 계정으로 추천 알고리즘을 완전히 리셋했더니, 돌아온 결과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소프트코어 성적 이미지와 서로 소리 지르는 근육질 남성들이었다. 이 실험이 눈길을 끄는 지점은 따로 있다. 성적 콘텐츠가 소셜미디어에서 잘 팔린다는 사실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그 콘텐츠를 걸러내고 추천하는 알고리즘의 설계 논리 자체가 성인 콘텐츠 업계에서 먼저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플랫폼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통째로 뒤집는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조회수를 끌어모은다'는 익숙한 결론에서 멈추기 마련이지만, 닐손은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추천 알고리즘을 애초에 누가, 어떤 산업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 짜맞췄는지를 캐묻는다는 점에서 기존 미디어 비평과 결이 다르다.

무엇이 달라졌나

닐손이 추적한 계보는 구체적이다. 1990년대 X등급 VHS 유통망에서 출발해, 2007년을 전후해 등장한 Pornhub·YouPorn·RedTube 같은 '튜브 사이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성인 콘텐츠 업계는 암호화 결제, 대용량 파일의 빠른 공유, 구독형 정기 과금, 그리고 사용자 취향을 추적해 다음 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까지 먼저 실전에 투입했다. 지금은 주류 플랫폼이 당연하게 쓰는 이 네 가지 요소가, 당시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성인 사이트 운영자들이 먼저 풀어야 했던 실무 과제였다는 뜻이다. Pornhub 한 곳에서만 2025년 상반기(1~6월) 사이 약 65만 개의 영상이 새로 게시됐다는 수치는, 이 업계가 다루는 콘텐츠 생산량 자체가 이미 주류 플랫폼과 맞먹는 규모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인스타그램·틱톡·X가 쓰는 '토끼굴형' 추천 로직, 즉 사용자를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유도해 체류시간을 늘리는 방식은 이 성인 사이트들이 먼저 최적화해 둔 설계를 그대로 물려받은 결과라는 것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콘텐츠의 소재만 순화됐을 뿐, 추천 엔진이 작동하는 원리는 그대로 이식됐다는 이야기다.

왜 지금인가

이 주장이 지금 힘을 얻는 이유는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알고리즘 투명성 논쟁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이 사용자에게 탐색 탭을 초기화할 수 있는 기능을 연 것부터가, 알고리즘이 개인의 노출 이력과 무관하게 어떤 '기본값'을 갖고 있는지를 사용자 스스로 확인해보라는 신호였다. 그런데 막상 그 기본값을 열어보니 나온 결과가 순치된 성적 이미지와 자극적인 남성 콘텐츠였다는 사실은, 플랫폼이 표면적으로는 선정성을 규제한다고 내세우면서도 알고리즘 설계 층위에서는 여전히 자극 중심 로직에 의존한다는 모순을 드러낸다. 여기에 더해 성인 산업 자체가 MindGeek 같은 소수 업체로 통합돼 온 흐름도 맥락을 만든다. 콘텐츠의 겉모습은 다양해 보여도, 유통망과 추천 로직을 쥔 주체는 오히려 소수로 좁혀졌다는 이야기다. 주류 플랫폼들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확장하면서 구독·팁·유료 커뮤니티 같은 과금 모델을 새로운 혁신처럼 내세우는 지금, 그 모델들의 원형이 이미 수십 년 전 성인 사이트에서 완성돼 있었다는 지적은 업계가 스스로 써온 혁신 서사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플랫폼들이 해마다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노출 수위를 통제하겠다고 공표해온 것과 별개로, 정작 추천 엔진이 어떤 콘텐츠를 우선순위에 두도록 학습되는지는 외부에 거의 공개되지 않아 왔다는 사실도 이 책이 파고드는 빈틈이다.

다음에 볼 것

닐손의 책은 이 논의를 미디어 플랫폼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 전반으로 번진 '포르노화' 현상으로 확장한다고 예고한 만큼, 알고리즘 이야기는 전체 주장의 입구에 가깝다. 독자 입장에서 이어서 확인해볼 지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쓰는 플랫폼에서 직접 탐색 탭이나 추천 피드를 초기화해보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이미 이 기능을 열어 뒀고, 새 계정으로 결과를 비교해보면 알고리즘의 기본값이 어떤 콘텐츠를 '안전한 기본'으로 삼는지 가늠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플랫폼들이 이런 지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다. 알고리즘 설계의 뿌리가 성인 산업에 있다는 주장이 확산되면, 콘텐츠 정책과 추천 로직을 분리해 설명해온 플랫폼들의 해명 방식에도 압박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규제 논의의 초점이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에서 '애초에 왜 이런 방식으로 추천하도록 설계됐는가'로 옮겨가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그 출발점 중 하나로 이 책이 계속 인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독형 크리에이터 플랫폼들이 성인 산업에서 이미 검증된 과금 구조를 그대로 들여오면서도 그 출처를 굳이 밝히지 않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이번 책이 촉발한 '원조 논쟁'은 한 번의 화제로 끝나지 않고 플랫폼들의 혁신 마케팅 서사 전반에 대한 재검토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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